내가 기억하는 신사임당, 그녀의 시와 그녀의 그림과 그녀의 일화 몇개로 기억하는 신사임당은, 순종적인 아내요 효성지극한 딸이요 아들딸 잘 가르친 현모양처가 아니다.
그녀의 시를 볼까?
踰大關嶺望親庭(유대관령망친정) ; 대관령을 넘으면서 친정을 바라보고.
慈 親 鶴 髮 在 臨 瀛 (자 친 학 발 재 임 영)
늙으신 어머님 아직 강릉에 계신데
身 向 長 安 獨 去 情 (신 향 장 안 독 거 정)
이내몸은 서울로 향하여 홀로 정을 떼는 구나
回 首 北 村 時 一 望 (회 수 북 촌 시 일 망)
머리를 북촌으로 돌려 때때로 보고 또 보니
白 雲 飛 下 暮 山 靑 (백 운 비 하 모 산 청)
흰 구름 여전히 푸르기만 한 저녁 산을 향하여 날아가더라.
뭘로 봐서 이게 모범적인 유교적 여성(그러니까, 일단 시집가면 친정과는 인연 끊고 오로지 남편만 바라보고 애들 키우며 시댁봉양하는 그런 여성...)인가-_-;
내내, 아주 이를 득득 갈고 있구만;;;
효성하나만 포인트로 잡는다면 유교적이긴 하다만, 대관령을 넘으면 시작될 낯선 삶에 대한 부담감과 그런 삶을 어쩔 수 없이 살아야만 하는 것에 대한 서러움, 앞으로는 어머니와 함께 마음만은 편안히 살던 시절을 떠나 원하지도 않는 방식으로 살아야만 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구구절절이다...
어머니 강릉에 놓고 왜 이렇게 나만 홀로 가야 하는 지, 그것도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가야만 하는 건지, 그리고 서울 가 봐야 내가 원하는 대로 살지도 못할 텐데, 시댁 뒷바라지 하고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바쁠테니 시나 그림 그릴 틈도 없을 텐데, 벌써부터 이렇게 그립고도 그리운데 흰구름은 저녁산만 향해 가고(즉, 서울방향), 등등등 등등등.
신사임당의 현모양처의 신화를 걷고, 그녀의 삶을 조금만 주의깊게 본다면 그녀의 삶이 당시로서는 상당히 자유로운(여러가지 조건하에) 편이었다는 것 정도는 금방 알 수 있다.
신사임당이 혼인한 날과, 저 시를 짓고 서울로 오는 사이엔 장장 20년의 시간 이 있었다. 결국, 율곡 이이가 태어난 오죽헌은 이원수의 집이 있는 서울이 아닌 신사임당의 집인 강릉 에 있게 된 것이다.
남편 이원수는 말년에 말단직(그나마도 급제가 아닌 낙하산으로 된 거다-_-;)하나 간신히 꿰찬 무능력자고, 공부를 잘하거나 똑똑했던 남자도 아니다. 편모슬하에 자라, 그다지 풍요로운 집안이었던 것도 아니다. 정말로 신사임당이 현모양처에, 남편을 지극히 뒷바라지하고 모셨다면, 그의 삶이 이렇게 시작이나 끝이나 비슷비슷한 시시한 인생이 될 리는 없다. 그는 현숙하고 지적이며 순종적인 아내를 얻어 그 내조에 힘입어 행복한 삶을 산 행운아가 아니라, 지나치게 똑똑하고 재능많은 여자를 아내로 얻어 내내 눌려 살았던 불쌍한 남자였던 것이다.
결혼직후, 신사임당은 부친상을 치른 후에 잠시 시댁에 다녀가긴 했지만 홀로된 자기 친정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이유로 거의 친정에 살았다. 남편 이원수는 부인과 같은 지붕 아래 차분히 살았던 적조차 별로 없었고, 그의 늙은 홀어머니는 며느리 맞이해 그 봉양을 받으며 편히 살기는 커녕, 그 며느리가 시짓고 그림그리고 애키우고 자기 어머니 보살피는 데 여념없을 내내 며느리 돌아올 날만 기다려야 했다. 이를 참다 참다 못참은 시어머니는 결국에는 파업선언을 하고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시위를 해댔고, 신사임당은 할 수 없이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친정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떠나오며 지은 시가 바로 저 시다 ㄱ-;; 당시 사회상을 생각해 보면, 참은 시어머니가 더 용하긴 하다;;)
평범한 양반가였음에도 딸에게 교육도 시키고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듬뿍 준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신사임당의 친정은 그녀에겐 밖에서는 절대로 누릴 수 없는 자유를 준 곳이기도 했다. 그녀라고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 대관령을 넘어가며, 구구절절 설움과 슬픔을 담아 저렇게 말하는 것도, 이제부터는 절대로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그녀 자신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의 신사임당이 이원수를 지극히 내조했냐면,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남편 이원수, 말단 직이나마 벼슬 얻고 기가 좀 살았는 지 신분 낮은 여자와 바람이 났고, 신사임당은 홧병으로-_-; 세상을 뜨게 된다. (홧병이었는 지,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서 그런 건지는 정확하지 않다.)
현모양처 신사임당은 현실의 신사임당이 아닌 가부장제가 만들어 놓은 환상에 불과하다. 그녀는 인텔리였고, 많은 재능을 갖추었던 여자이며, 그녀가 태어난 집이나 그녀가 시집간 집안이나 그런 그녀의 재능을 부족하게나마 발휘할 기회를 주었던 나름의 행운아였다.
진짜 신사임당대신, 그 자리에 가부장제를 위해 존재하는 정숙하고 순종적으로 남편을 내조하는 아내이자 현명한 어머니, 효성스런 며느리이자 딸을 만들어 넣은 것은 그녀 자신이 아닌 후대사람이자 바로 지금의 우리들이다. 여학교 운동장에 세워진 그녀의 동상, 복도에 걸린 그녀의 초상화들로, 너무 오랫동안 그녀를 그저 '현모양처의 모범, 신사임당'으로 규정되기만 했을 뿐이다.
자신을 위해 남편과 시어머니를 내팽개쳐 두고, 이십년간 자신의 삶에 충실하게 살았던 여자, 남편으로 하여금 잘난 아내를 두었다는 컴플렉스에 시달리게 했던 여자,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했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부족하나마 누리고자 했던 여자, 그리고 자신의 가능성을 모두 실현시키고 싶어했던 여자, 그렇게 결국 조선시대 여자로서 높은 유명세를 누리게 된 여자, 그녀가 바로 신사임당이다.
신사임당은 가부장제의 여신이 아니다. 그녀의 삶은 내내 그 유교적 가부장제의 기준에 어긋나 있었고, 그녀 자신도 그렇게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녀의 삶과 일화는 어떻게든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을 지언정,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삶을 억지로 살고 순종하라고 가르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위한 삶을 포기하지 않은 어머니가 나쁜 어머니가 아니라 정말로 훌륭한 어머니가 될 수 있음을 자신의 아이들로 증명했다.
p.s. 생각해보니.... 애는 친정엄마랑 키우고 집안일은 시어머니한테 맡긴다는, 전형적인 된장유부녀;
덧붙입니다. 신사임당의 시대는 중종이고, 당시는 조선 후기만큼 극단적으로 보수화 되지는 않았던 시절인 건 맞습니다. 연산군 시대와 함께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시기이긴 합니다만, 당시에는 유학자 집안에서도 장남에서 막내딸까지, 아들 딸 모두 제사를 돌아가면서 지냈고, 재산도 어느 정도는 골고루 분배되었으며, 장남이 아닌 경우(장남은 예외였던 듯 보입니다) 차남부터는 장가가서 부인 집에서 2-3년 사는게 흔한 사회였던 거 맞습니다. 아무리 신사임당 집안이 좀 풀어주는 집안이었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친정에 들러붙어 살아도 남편이 불평불만 했다는 기록은 있어도 사회적으로 지탄까지 받았다는 기록은 없더군요....(제가 못 본 건 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여기저기서 유교적 보수화가 진행되던 시기인지라, 조선 전기만큼 우호적이고 자유롭지만도 않았을 듯 합니다; 당시 분위기를 봤을 때, 신사임당의 행적이 허용은 되도 좀 심했던 거라고 보는 게 적절할 듯 합니다.
(고작 6-70년 뒤에 태어난 허난설헌이 어찌 되었는 지 본다면요....;; 뭐, 이 때부터는 조선 후기로 봐도 될 듯 하지만.)
저는, 극단적 남녀차별은 조선시대의 유산이라기 보다는 일제시대의 유산이라고 보는 편입니다. 그리고 그녀를 현모양처의 신화로 되바꾸어 숭배하도록 한 건 전체주의 사회에 가까웠던 과거 군사정권이죠. (건강한 아이를 낳아 훌륭하게 키우고 일선에 나간 남편을 헌신을 다해 뒷받침하는 엄마신화....-_-;; 말입니다.)
신사임당은 극단적 유교사회에서 살았던 사람도 아니었고, 그나마도 그렇게까지 남편 챙기며 살았던 사람도 아니었다는 게 개인적인 평가입니다. 애들 교육 애들 교육~ 해도, 신사임당 본인이 잘 가르쳤다기 보다는 친정 집안 분위기가 공부하는 분위기고 무엇보다도 애들 자체가 똑똑해서-_- 그리된 거 아니겠습니까. 희생적 여성상의 표본은 개뿔이;;
그런 사람이 현모양처 신화의 표본이 되어 논란이 되고 있는 것도 보기 착찹하더군요.
# by | 2007/10/04 01:19 | 잡데구리 | 트랙백(1) | 핑백(1) | 덧글(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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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술가 신사임당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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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틀양/ 아마도 조선중기와 후기의 차이도 있었던 것 같아요. 중종시대만 해도 어느 정도는 융통성 있는 시대였을 테지만, 허난선헐이 살았던 시대는 극단적으로 보수화된 시절이니까요.
NHK에/ 네, 그런 것 같습니다. 현재 신사임당이란 이미지는 그녀 자신이라기 보다는 전체주의 군사정부 시대가 만들어낸 신화에 불과한데, 그게 너무 뿌리깊다 보니-_-;; ('어머니신화' 야 말로 전체주의 정권이 자주 써먹는 여성교육방침이죠) 결국 그런 이미지로 지폐에 올라가는 것이니, 더더욱 난감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이번 기회에 그녀에 대한 현모양처의 신화가 바뀌었으면 합니다.
지폐 인물선정 다시 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전 저도의 관순이누나 빠
남존여비 사상에 기여해서 시댁과 남편에 복종해야 하는 관념은 조선후기에 성립이 된거고
저 시대때 웬만한 양반집에서도 처가 제사를 모시거나 처갓집에서 사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남편 이원수를 불쌍한 인간 취급하시는데, 이원수가 기묘사화 때 윤원형 편에 가담하려 하자 이를 말린 것도 신사임당이었습니다. 정치에 가담하지 않는 주부가 봤어도 영 아닌 것 같은 권세에 힘을 빌리려 하는 하급 통찰력인데 오죽했겠습니까.
어쨌든 저는 나혜석 언니 하악하악..(,,,)
재밌는 해석이시군요:) 마지막 줄에서 대폭소하고 갑니다;
이이가 이미 화폐의 인물인 이상 다른 오를사람 없는것도 아닌 상태에서 굳이 사임당을 올릴 필요는 없다고 보거든요
전 삼일운동의 상징성때문에도 유관순 열사가 올라야한다고 생각해요
어린학생도 스스로 나라를 걱정해서 비폭력 저항운동을 스스로 주도했잖아요
그래서 저도 누님이 올랐으면 하지만.....
그건 조폐공사에서 최종결론을 내리는거라서 어찌될지는 모르겠네요
본문으로 돌아와서,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저도 어제 친구랑 '신사임당의 시와 서화 등의 예술적 재능으로 지폐 모델이 된다면 그것도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 현모양처의 이미지로 들어가는 건 납득할 수 없어!'라고 분개했답니다.
윗분 말씀대로 화폐 모델로 넣으려는건 그녀의 '재능'을 봐서가 아니라 유교적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표본'에 합당하기 때문이고 말이죠.
현모양처는 말그대로 현명한 어머니, 좋은 아내 라는 뜻입니다.
희생과는 다르다는걸 짚고 넘어갑니다.
그리고 당시 아무리 출가외인이라곤 하지만, 멀리 계신 어머니께서 아프신데, 그걸 눈물지으며 시를 짓는게 무슨 '이를 득득 가는' 일입니까.
당연히 자식으로서의 효를 다한 아름다운 시라고 생각됩니다만.
글 쓰신 분께서 신사임당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현모양처가 아니었으며, 때문에 지폐도안에 신사임당이 오르는건 바람직하지 않다! 라고 한다면 반박하고 싶습니다. 신사임당이 지폐도안 후보에 오른것은 그 시대의 일반적인 여성상이 아닌 지식인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요? 여자라고 집안일이나 하고 남편 뒷바라지나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학과 그림등에서 재능을 살리고 공부한 지식인이 었기에 오늘날의 '위인'이 된 것이 아니었나요?
농담으로 하신 말씀이신 줄은 알지만 도대체 어디가 "된장녀"라는 건지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자식을 친정어머니와 키우고 집안일을 시어머니께 맡기는 것이 된장유부녀인가요?
적어도 육아와 집안일 모두를 시부모님 또는 친청부모님께 맡기고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탱자탱자 놀면서(=일도 안하고) 분에 맞지 않게 명품이나 사들이고 겉치례에만 신경쓰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된장유부녀 아닐까요?
아울양님의 말씀은 얼핏 '공부하는 여성', '일하는 여성', '능력있는(그 능력을 썩히고 싶지 않아 하는) 여성' 모두를 '된장녀'로 몰고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혼한 여자는 일이고 뭐고 집에서 남편 내조 잘하고 시부모님 잘 모시고 집안일 잘하고 자식 잘 기르는거지' 이런 의도가 아니셨다면 P.S는 수정하시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우리 동네가 옛적 고려 신라 때는 명주라 불리며 아주 잘 나가던 동네였지요.
조선 건국 이후 개경이 풀썩 주저앉은 것처럼 명주도 그 된바람을 맞아 옛영화와는 한참 떨어진 삶을 살았다고 동네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데, 저 같은 경우 고려시대의 영향이 짙다는 특성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이건 본문과는 별 관련이 없고 그냥 어디까지나 지역주민으로서의 사견.
최근 여성계에서 신사임당이 권면인물로 적당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자, 현명한 아내로서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여성의 역할상을 어머니, 아내로서의 역할로만 한정시키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라 합니다.
아울님은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자신의 삶이 없는 순종적 여성)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앙팡님의 생각과 동일합니다.)
다만 제 생각에는 댓글을 다신 분들이 많이 지적하고 계신바와 같이
신사임당을 유교적 여성상의 화신(아내,어머니)으로 해석하려는 사회일각의 시도가 있는것은 분명하고
권면인물로서의 신사임당이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아내와 어머니로 한정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신인선 씨의 진면목이 어떠했건 간에 사회적으로 고착된 신사임당의 이미지가 너무 강고합니다. 훌륭한 예술가로써의 신인선 씨를 올린다면 그 자체는 반대할 이유가 없겠죠. 하지만 예술가 신인선 씨의 초충도라도 기억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지는 실체보다 힘이 세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니까요. 당장 길에 나가 아무나 잡고 신사임당 하면 뭐가 떠오르냐고 묻는다면 현모양처, 지폐 모델, 율곡 이이 엄마라는 키워드들이 나올 거라는 데 100원 걸겠습니다. 그리고 현모양처라는 말이 많은 여성들에게 무언의 억압으로 다가오는 이 땅에서 신사임당의 선정은 논란거리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요. 후손들의 이미지 왜곡 포화를 맞으신 신인선 씨께는 참 죄송한 일이지만 '현모양처'로서 지폐 모델이 되는 건 아마 본인도 바라지 않을 겁니다.
사실 이래저래 말해 봤자 결국 한은이 이번에 여자 하나를 후보로 올리기는 올려야겠고 그나마 많이 아는 사람이 신사임당밖에 없어서 얼렁뚱땅 선정했을 거라는 데 1000원 걸겠습니다. -_- 유관순 열사를 올린다면 아마 김구 선생을 배제하게 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으니 그냥 빼버렸을 거라고 봅니다.
차라리 소서노를 올리던지, 너무 먼 시대 인물이라 실감도 안 난다면 선덕 여왕을 올리는 게 나았을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선덕 여왕은 사생활 문제가 있어(삼촌과의 근친 혼인 때문에?) 안 될 거라는 소리도 어제 이글루에서 봤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웅녀...; 아, 이 분도 단군왕검 낳은 거 외에는 한 일이 없군요. ; 아들 잘 낳아서 지폐에 오른다면 차라리 한글 창제 세종대왕을 낳은 원경 왕후가 제일 유력한 후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신사임당이 오르면 우리나라 화폐에 새겨진 인물들은 모두 조선 시대 인물들로 편중되죠. 광개토 대왕이야 중국 눈치가 무서워 못 올린다고 해도 삼국, 고려 인물들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굳이 남녀/시대를 안 따진다면 차라리 장영실이나 서희가 올랐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소서노를 올리려면 일단 초상화부터 어떻게 제작하고 봐야겠군요. 초상화가 존재하지 않으면 국가 지정 화가분들이 표준 초상화를 제작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쉬운 일은 아니니 남은 여성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선덕 여왕밖에 없는 걸까요.
앙팡/ ps 같은 내용을 보고 농담이라고 합니다.
ps 전의 마지막 문단을 보시면 아울 님이 하시려는 말씀이 뭔지 요약이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글을 쓰기 위해 너무 곡해하신 것이 아니신가 합니다. ㄷㄷ (아님 세뇌가 넘 잘되있는건가..)
만화소녀님. 선덕 여왕이 삼촌과 근친혼의 사생활이 있었다니요? 삼촌과의 근친 상간 문제는 훨씬 뒤, 신라 말기의 진성 여왕입니다만.
선덕 여왕도 지폐의 인물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군요, 그러고보니.
어째서 저런 여성이 유교의 현모양처의 화신처럼 알려졌는지 불가사의할 정도입니다.
율곡 이이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사임당의 글이나 그림이 남아나 있을까요?
결국 사임당의 명성은 자기 자식의 명성에 기대고 있다고 봐야죠
그런면 에서라도 좀더 주체적인 인물이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만
유관순도 괜찮고요 아 왜 한국엔 퀴리부인 수준의 인물이 없는걸까요?
우리의 유관순님을 지폐에 넣으면 안 되는걸까요.
유관순 정도면 누구나 다 인정할텐데
이미지가 현모양처가 아니다?? 장난해?? 그럼..어찌할까?? 요즘 대세에 맞게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세 번의 이사를 했다는 맹자의 어머니?? 아님 요즘 뉴스에서 잘 나간다는 미술관 관장?? 아님 신정아??
니네가 바라는 여성상이란게 대체 뭐냐?? 자식이야 어떻든 쏘셜 포지션 잡는데 성공한 사람들만 껴야 하는거냐?? 무엇을 한다 그러면 무조건 막고보자는 식의 언론 플레이는 하지 말란말이다..대안을 내놓고 할 말을 하란 말이다..신사임당이 뭐 어때서?? 위인전기에 꼭 들어가는 인물 중 한 사람이 신사임당 이다..그럼..이제 위인전기를 뭐라 해야하나?? 허접전기?? 구라전기?? 어느 단체는 신사임당 상 까지 내려지는 바 있다..그럼 이 사람들은 죄다 병진이냐?? 국민들 세금 받아서 그렇게들 할 짓들이 없는가?? 비싼 쌀밥 쳐먹고..생각은 그렇게 싸구려 밖에 안되?? 니네야 말로 자격증이나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