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야의 일족] - Pilot




    pilot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

    쇼온이 투덜댔다.

    “비가 오면 이상한 것들이 나오지.”

    이갈드가 말했다.







  “이상한 식물이 싹 트고, 괴어들이 수면위로 오르고, 해괴하게
  생긴 개구리나 지렁이들이 꾸물꾸물 기어 나온단 말이야.”

  비는 점점 더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굵은 빗줄기가 얇은 지
  붕을 뚝뚝 두드려댔다. 여관 옆 계곡물이 부풀어 올라 쿨렁 쿨렁
  큰 소리를 내며 휘몰아쳤다.

    “무서운 이야기나 해 봐, 이갈드.”
    “귀찮아.”
    “하나만.”
    “여우 이야기가 있지.”
    “여우 이야기?”

    이갈드는 단검을 돌리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붉은 여우들 말이야. 이것들은 사람을 먹고 그 사람으로 변해.
  조심하라고. 아는 사람 중에, 그 사람인 척 하는 여우가  있을 지
  도 모르니까.”
    “처음 듣는데, 그런 이야기는.”
  “그냥 여우들 말고, 좀 별스런 것들이 있지. 그것들은 말이
  야…… 죽어가는 사람한테 가서, 그 사람의 얼굴을 뒤집어쓰고 그
  사람인 척 하는 거야.”
    “그 사람은 어떻게 되는데?”
  “예정보다 조금 일찍 죽는 것뿐이야. 하지만 그 사람의 얼굴,
  그 사람의 인생, 그 사람의 이름, 모두 그 여우의 것이 되지. 여우
  는 그 사람의 인생을 가로채는 거야.”

    릭콘이 끼어들었다.

    “웃기지마. 차, 차라리 흡혈귀 이야기가 더 그럴싸하겠네.”
    “흡혈귀는 진짜야.”

    조용히 있던 험프가 말했다. 평소라면 제일 으스대며 설칠 녀
  석인데, 오늘은 내내 창백해져서는 계속 창밖을 흘끗거린다.
  그 때 철창이 덜그럭대며 꽥꽥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험프
  가 고개를 돌렸다.

    “시끄럽네, 저거.”
    “죽이던가 놔주던가 해. 밤 새 저럴 거야.”

    쇼온이 말했다.

  “팔면 꽤 받을 거야. 도박장에선 저런 것 좀 구해달라고 안달하
  지.”
  “관 밖으로 기어나온 시체는 시체가 아니라 괴물이고, 숲 밖으
  로 나온 짐승은 식인귀야. 사냥꾼은 짐승을 산채로 잡아선 안 된
  다고. 내 말대로 해, 험프.”
    “그러니 그렇게들 궁상맞지. 돈 되는 짓을 안해.”
    다시 위에서 깍깍대는 소리가 들렸다.

    이갈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너는 왜 그러고 보는 거야, 이갈드.”

    험프가 시비를 걸었다.

  “쇼온 말이 맞아. 놔 줘. 저건 새끼지만, 새끼가 어미보다 더 위
  험해. 어미가 새끼를 찾으려 들면, 너희들 굉장히 험한 꼴 당한
  다.”
  “네가 알 게 뭐야. 어차피 너는 어제 저걸 잡을 때 끼지도 않았
  잖아.”
  “너희들이 날 버리고 간 거잖아. 같이 갔으면 너희들 머리를 깨
  서라도 말렸을 거야.”

   험프의 어깨가 흠칫하고 흔들렸다. 건너편에서 그들을 보고 있
  던 릭콘도 턱을 달달 떨고 있었다. 둘 다 정말로 겁에 질려 있었
  다. 내내 저러는데, 쇼온은 이 녀석들이 대체 왜 이러는 건지 도
  무지 알 수 없었다. 쿵, 하고 천둥이 울렸다. 저 위에서 끙끙대는
  소리가 들렸다. 쇼온은 정말로 듣기 괴로워졌다.

  “어떻게 좀 해 봐. 밤 새 저렇게 놔둘 거야? 그냥 놔줘버려. 어
  차피 이 산의 짐승들은 못 키운다고 몇 번이나 말해!”
    “못 참겠으면 네가 밖에서 자던가!”

   그 때, 이갈드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었다. 너무 갑자기 고개
  를 드는 바람에, 그에게 반쯤 기대고 있던 쇼온은 의자 째 넘어질
  뻔 했다.

    “왜 그래?”
    “누가 오는데.”

    이갈드의 얼굴이 창백했다. 쇼온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쿵, 쿵- 코끼리만한 것이 다가오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바
  닥과 벽으로 미세한 진동이 울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문 앞에서
  뚝 멈추었다. 여관주인이 엄청난 속도로 뛰쳐나와 문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여긴 웬 일이십니까?”

    주인은 왕이라도 온 듯 허리를 깊게 굽혔다.

    “자러 온 건 아니다. 여기 손님들에 대해 듣고 온 거다.”

  놀랍게도, 여자 목소리였다. 목소리 하나하나에 새하얀 칼날을
  세운 듯 차갑고 매서웠다.

    “네?”

   여자는 안으로 들어왔다. 빗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우비의 후드
  를 잡아, 뒤로 휙 넘겼다. 빗물이 뒤로 촥 튀었다. 젊은 여자였다.
  그러나 아주 젊거나 어린 분위기는 없다. 주름도 없고 턱에 살이
  잡힌 것도 아니었지만, 여자의 눈빛이나 분위기는 옆에 남편 하나
  와 애 두셋은 다스리는 듯 한 위엄(무서운 분위기 비슷한)을 느끼
  게 했다. 얼굴은 검은 편이고, 머리카락은 금갈색에 숱이 풍성했
  다. 뒤로 땋아 말아 올려서, 더 나이든 분위기가 난다. 이갈드가
  눈에 뜨이게 창백해지더니, 애써 태연한 척 하며 턱을 괴었다. 그
  러나 영 어색했다.

    “아는 사이야?”

    쇼온이 묻자, 이갈드는 맹렬히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사람이야.”
    “그럼 표정이 왜 그래?”
  “자네는 호랑이를 앞에 놓고서도, 아는 호랑이와 모르는 호랑이
  의 구분이 필요한가?”
    “아니.”
 
  여자는 주변을 다 얼릴 듯 싸늘하게 둘러보다가, 2층에서 끙끙
  대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었다.

    “여기 있었군.”
 
   그리고 여관주인을 쏘아보았다.

  “내가 찾는다고 여기저기 알리지 않았나? 왜 내게 알리지 않았
  지? 너에게도 분명 전해졌을 텐데!”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정말입니다. 하지만 저… 저기, 여기 손
  님분들이 있어서.”

    여자는 사냥꾼들을 경멸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형편없는 것들이군. 가만, 가만 너.”

    그리고 그녀가 이갈드를 가리켰다.

    “너는 왜 여기 있는 거지!”

    이갈드의 얼굴이 더더욱 창백해졌다.

    “모르는 사람이라며?”

    쇼온이 작게 물었다.

    “정말 모르는 사람 맞아.”
    “그럼 왜 저러는 거야?”
    “호랑이가 여우에게 으르렁 댈 때, 아는 여우와 모르는 여우의
  구분이 필요하냐?”

    이갈드다운 수사법이긴 했고, 그래서 쇼온은 알아들을 수 없었
  다.
   여자는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뒤 쾅쾅, 하고 뭔
  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철창을 박살내는 소리였다. 놀란 험
  프가 외쳤다.

    “야, 너, 여자, 너!”

   잠시 뒤 여자가 나타났다. 여자의 품안엔 금빛 털을 길게 기른
  작은 짐승이 안겨 있었다. 긴 꼬리가 여자의 허리를 감고 있었다.
  녀석은 험프를 보자마자 목을 울렸다. 험프가 고함을 질렀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당신. 이건 내 거라고!”

    여자가 눈을 하얗게 뜨며 험프를 노려보았다.

  “뭐가 네 거지? 이 아이는 너에게 잡혀 온 거지, 너를 따라온
  게 아니고, 네게 이 숲의 모든 짐승에 대한 소유권이 있는 것도
  아니야. 즉, 너는 이 아이를 훔친 거야.”
  “무슨 헛소리야. 그건 내 거고, 가지고 가려면 돈을 내던가 도
  로 내려놓던가 해.”
    “꺼져. 먹어치우기 전에.”

   화가 치민 험프가 허리에 찬 몽둥이를 잡았다. 쇼온이 일어나
  그 손목을 잡았다.

    “하지 마.”
    “놔! 저 년 머리를 후려갈겨야겠어!”
    “하지 말라고 했어!”

    여관주인도 말렸다.

    “그만하십시오. 여사님은 어서 돌아가십시오. 이곳은 제 집입니
  다.”
  “이곳에 저 사냥꾼들을 받을 때, 내가 분명 규칙을 정하지 않았
  었나? 하루라고 했잖아. 하루 이상은 안 된다고! 벌써 이틀인데
  저 녀석을 그냥 내버려 둬?”
  “죄송합니다. 제가 어제 몸이 좋지 않아서…… 게다가 집사람도
  애들을 돌보느라 바쁘답니다. 그래서 미처 처리를 못했습니다.”
    “거미도 너보다는 부지런하겠다. 치우려면 어서 치워.”
    “네, 죄송합니다.”

   여자는 신경질적인 걸음으로 여관을 나갔다. 그녀의 품에 안긴
  작은 짐승이, 험프가 보고 있자 다시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뭐야, 저 미친 여자는.”

    험프는 여관주인을 보았다.

  “죄송합니다. 근방에 사는 분입니다. 귀한 가문 출신이라, 조금
  무례하긴 하답니다.”
    “저 여자, 대체 뭐하는 여자야?”
    “말씀드렸잖습니까.”
    “부잔가?”
    “네. 잠시 이곳에 머물고 있는 거랍니다. 저기 저 길 끝에 있는
  별장에서 머물고 있는데, 이틀이나 사흘 정도 뒤엔 떠날 거에요.
  딸하고 같이 와 있답니다.”
    “딸? 남편은?”
    “같이 안 왔습니다.”
    “하인이 몇이나 있지?”
    “까다로운 사람이라, 셋 이상은 없습니다. 그 중 둘은 하녀이자
  요리사고, 다른 하나는 어린 하인이죠. 짐꾼입니다.”
    “마부는 없나?”
    “필요하면 제가 불러드린답니다.”

    험프가 씨익 웃었다.

    “그래?”

    쇼온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아챘다.
   

 

 


   쇼온, 이갈드, 험프, 릭콘, 이 네 명은 전날 교차로에서 우연히
  만났다.
  넷 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쇼온은 끼어들기로 했던 사냥
  단을 놓쳤고, 이갈드는 길을 잃는 바람에 역시나 자신의 사냥단을
  놓치고 돌아가려다가 역시나 길을 잃고 그 교차로에 도착한 것이
  라 했다. 험프와 릭콘은 이갈드를 보자마자 펄쩍 뛸 듯이 놀라더
  니 더듬더듬 횡설수설 얼빠진 듯 굴기 시작했다. 왜 저래, 하고
  쇼온이 이갈드에게 물었다. 이갈드는 ‘자기가 죽였던 사람이 돌아
  온 걸 봤나봐. 으하하하.’ 하며 히죽대고는, 교차로 북쪽을 가리켰
  다.

  “올게반 산으로 가는 길이야. 다들 한 두 번 씩 들어본 적 있겠
  지? 엄청난 숲에, 그 안에 있는 짐승들도 엄청나지. 사냥꾼들의
  보물섬이라고!”

    쇼온은 그 말에 놀랐다.

  “어라, 거기 근처야? 내가 어쩌다 여기로 온 거야? 훨씬 더 남
  쪽에 있었는데.”

    이갈드가 쇼온의 어깨를 두드렸다.

  “길을 잃으면 방향감각이 좀 이상해지잖아. 아랫자락에 내가 아
  는 여관이 하나 있어. 저녁 해가 저물기 전에 갈 수 있는 곳은 그
  곳 뿐이니 어서들 가자고.”

    그리고 쇼온의 목을 감아 당기며 빠르게 물었다.

    “그런데 너는 여기 왜 끼어든 거야?”
    “무슨 소리야?”
    “왜 끼어들었는지 모르겠다고. 최근에 너 뭐하고 다녔냐?”
    “별로. 늘 하던 대로 하고 다녔어.”
  “하지만 네가 늘 하던 대로 했으면 여기 낄 리가 없으니 그렇
  지. 정말 뭘 하고 다닌 거야?”
  “자꾸 헛소리 하네. 어서 가자. 이번에 허탕 치면, 빚 갚긴 글렀
  다고.”
    “빚?”
  “손 털려고 투자를 했다가 말아먹었어. 동업자 빚까지 뒤집어
  써버렸지 뭐야.”
    “요즘 세상에 장사에 손대냐. 미쳤다, 너.”
    “달리 손댈 곳이 없는 것도 사실이잖아.”

   이갈드의 딸 뮈리엘의 결혼 이야기가 나온 것은 그 길 위에서
  였다. 젊었을 때도 지금도 미남인 이갈드를 닮아, 딸도 굉장한 미
  녀였다.

    “그 뮈리엘을 낚아챈 사위는 뭐하는 사람이야?”
  “농장. 아주 커. 시내에서 눈이 맞았더군. 나이야 자네보다 좀
  많긴 한데, 딸애한테 홀딱 빠져 있지. 사람도 착해 보이고, 집도
  괜찮은 것 같아서 허락했지.”
    “언제 결혼하는데?”
    “조만간.”
    “서운하겠네.”
    “별로.”

  부럽군, 하고 쇼온은 생각했다. 쇼온은 가정이 있는 사람이 정
  말로 부러웠다. 다정한 아버지 밑에서 컸던 쇼온에게 집이란 세상
  에서 제일 행복한 곳이라, 언젠가는 꼭 이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
  고 머물 집과 의지할 가족을 가지고 싶었다. 무리하게 투자를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여관은 산자락에 있었다. 옆으론 커다란 계곡이 있고, 뒤로는
  커다란 떡갈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주인은 문 앞에 나와 기다
  리고 있었다. 방도 마련되어 있었고, 식사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그들을 처음부터 기다린 듯 했다.
  식사를 하고 한숨 자고 일어나니 릭콘과 험프가 사냥을 나가자
  고 했다. 계획엔 없었지만, 유명한 숲에 온 김에 한번 사냥을 하
  자는 것이다. 쇼온은 반대하고 이갈드는 찬성했다. 쇼온은 그냥
  여관에 머물렀다. 반나절 정도 지나자 이갈드가 혼자서 돌아왔다.
  두 시간 뒤에 험프와 릭콘이 돌아왔다. 그들 손에 금빛 털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고양이 비슷한 것이 들려 있었다. 그들은 의기양양
  하게 들어왔다가 이갈드를 보고 기겁했다. 이갈드는 그들이 잡아
  온 짐승을 보고 물었다.

    “살았어?”
    “살아, 살아있는 거야?”
    “네가 도로 물어보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살았어?”
    “사, 살았어.”

    그리고 둘은 그 후로 내내 이갈드를 흘끗거리며 쑥덕댔다.
  내내 이상한 하루다, 세상이 아닌 곳에 있는 기분이다, 쇼온은
  2층의 자기 방으로 가며 생각했다.

    이갈드가 따라오자, 쇼온은 나즈막이 말했다.

    “이갈드, 너도 소문 들었지? 제리미어 말이야.”

    제레미어는 예전에 쇼온이 아버지가 실종된 후 혼자서 떠돌아
  다닐 때 많이 도와줬던 사람이었다.

  “얼마 전에 죽었잖아. 저 녀석들이 털었다는 소문이 자자해. 소
  문까지 갈 것도 없고 확인까지 갈 것도 없어. 분명해. 저 놈들 짓
  이야.”
    “알아.”
    “당신이 저 녀석들을 사냥회에 고발할 거라고 들었어.”

   둘은 홀을 돌아보았다. 험프와 릭콘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릭콘은 고개를 끄덕이며 단검을 돌리다가, 이갈드가 보고 있자 흠
  칫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쇼온이 말했다.

    “벌써 고발한 것 같은데. 저 녀석들 하는 걸 보니.”
    “당연히 고발 했지.”
    “그래서 내내 저러는 거군. 위험하잖아, 당신.”
    “그래. 그래서 그런데 나도 그렇고 너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왜?”
    “오늘 분명 저 여자 집을 같이 털자고 할 테고, 너는 거절할 테
  고, 그러면 어쩌겠어. 아무리 너라도, 저 두 놈이 붙들고 늘어지면
  버티기 힘들걸.”
    “당신은 어쩔 건데?”
    “너한테 제의하기 전에 죽여 두겠지..”
    “젠장, 더럽게 걸렸군.”
    “진정해. 정말 저 녀석들이 그 여자 집을 습격하지 않는 한, 그
  냥 의심이 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 녀석들을 두들겨 놓을 수
  는 없어.”
    “조심하라고 경고는 하러 가야 하잖아.”
    “그 여자한테? 도둑놈이라고 두들겨 맞지나 않으면 다행일거
  다.”

    쇼온은 이갈드의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혼자서라도 나가겠어. 그리고 당신, 방금 전 분명 당신도 위험
  하다고 하지 않았어? 나를 도와야 되는 거 아냐?”
    “아니, 나는 괜찮아.”

    내내 말을 참 헷갈리게 한다.

    “대체 무슨 생각이야?”
    “우선 너는 이 여관 밖으로 나간 다음 계곡 밖으로 도망치는
  거지. 그게 제일 옳아.”
    “당신은?”
    “나는 여기 있어야 하고.”
    “정말-”

     이갈드가 쇼온의 턱을 가리켰다. 쇼온은 입을 다물었다. 이갈드
  가 말했다.

    “하지만 네가 그 여자를 찾아가 도와주겠다면, 내가 도와주겠
  어. 너 혼자 가는 것 보다야 나을 거야. 하지만 경솔하게 굴지는
  마. 적어도, 저 험프와 릭콘 녀석이 네게 그 이야기를 꺼내고 상
  황이 확실해 진 다음에 움직여. 안 그러면 오히려 네가 덮어 쓴다
  고.”
    “그러면 너무 늦어.”
    “쇼온, 젊은 티 내지 마. 지금 간신히 사냥꾼회에 고발해서 저
  녀석들 척살령을 받아둘까 말까한 상황이야. 저 녀석들이 뻣댈 곳
  을 주면 안 된다고.”

  이갈드는 먼저 2층으로 올라갔다. 혼자 있는 쇼온에게 험프가
  다가왔다.
 
    “이갈드가 뭐라고 했어?”
    “피곤하다고 먼저 자겠다는데. 나도 피곤해. 먼저 잘게.”
    “안 낄래?”
    “무슨 소리야?”
    “방금 그 여자.”

   쇼온은 키가 작은 험프를 내려다보았다. 험프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너, 혹시 집이라도 털겠다는 거야?”
    “안 되는 건가?”
    “나더러 도둑질을 하라는 거잖아!”

    험프가 웃었다.

    “소문대로군, 너.”
    “소문이라니?”
    “매사 참 정직하게 군다는 거 말이야. 그렇게 굴다가, 이번에
  사기 당했다며? 너무나 정직하게 군 덕에, 사기공범으로 몰려서
  네가 된통 뒤집어 썼다고도 들었다.”
    “너-!”
    “돈 필요하지 않아? 저 여자, 분명 엄청난 거부일 거야. 보석
  한두 개 쯤은 가지고 있을 테고, 그 중 하나만 가져가도 네 빚은
  눈처럼 녹아 사라질 거야. 어때?”
    “거절한다. 그리고 그만 둬. 그 짓 하려고 하면, 내가 당장-”
  험프의 단검이 튀어나왔다. 쇼온도 단검을 뽑아 막으려 했지만,
  험프는 팔을 당겨 단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이갈드가 계단 난간에
  기대어 서 있었다.
  “어이, 어서 올라와라. 쇼, 네가 없으니 내가 잠이 안 온다. 네
  가 옆에 누워야 이 몸의 피로가 가실 것 같구나.”
    “죽인다, 너!”

    쇼온은 기겁해서 계단으로 뛰어 올랐다. 이갈드는 쇼온을 데리
  고 2층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쇼온과 릭콘이 속닥대며 올라
  오는 소리가 들렸다.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소곤대는 소
  리도 뚝 그쳤다. 쇼온은 짐가방을 집어 올렸다.

    “방금 험프 녀석이 그 여자 집 털자고 말 했어. 이제 더 기다릴
  필요 없는 거 아냐?”
    “그래, 짐 챙겨라.”

    1층으로 내려가, 여관주인에게 값을 지불하고 문을 나섰다. 문
  을 여니 빗줄기가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그 집은 어디에 있는지 알아?”
    “왼쪽 모퉁이를 돌면 돼.”

    이갈드는 엄지손가락으로 왼쪽을 가리켜 보였다.

 

 

 

 

    호기롭게 나오긴 했지만, 날도 추운데 비는 거세고 어둡기까지
  했다. 얼굴로 달려드는 물줄기 때문에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어이, 이갈드! 제대로 걷고 있는 거 맞아?”

    그러나 빗줄기 속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갈드!”

    아무 답도 들리지 않았다. 쇼온은 어깨너머로 돌아보았다. 빗줄
  기 너머가 새카맣다. 많이 걸어오진 않았다. 여관의 불빛이 흐릿
  하게 보여야 정상이다. 쇼온은 돌아서 걸어갔다. 그러나 한참 온
  것 같은데도 여관의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여태까지 걸어온 길이
  다른 길로 바뀐 듯, 걸어온 대로 뒤집어 가는 것이 분명한데 불빛
  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갈드! 이갈드! 이지, 어디갔어!”

  이갈드는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비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쇼온은 포기하고 돌아섰다. 어쩌면 그 저택에 먼저 도착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다급히 걷다보니 불빛이 보였다. 쇼온은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늙은 여자가 맞으러 나왔다.

    “누구시죠?”

   하녀의 목소리는 깜짝 놀랄 정도로 컸다.

    “저기, 오늘 여기 주인 되시는 분-”
    “마님 말씀이시죠?”
    “네, 오늘 그분이 어느 여관에 들르셨지요?”
    “그렇습니다.”
    “저 여관에, 강도들이 있습니다. 그 강도들이 마님이 돈이 많다
  는 것을 알고는 오늘 밤 여기를 털려고 하고 있습니다. 조심하라
  고요. 정말입니다. 꼭 조심하셔야 합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아, 잠깐 들어오세요.
  비가 너무 거세군요. 처마 밑에서라도 계세요.”
    “감사합니다.”

    하녀가 수건을 건네주었다. 쇼온은 그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물었다.

  “혹시, 키가 크고 마른 남자가 오지 않았습니까? 제 친구입니다
  만.”
    “아뇨, 그런 사람 없었는데요. 아무도 안 왔어요. 잠시만요.”

    하녀는 안으로 들어갔다. 쇼온은 저택 거실을 보았다. 거실에
  머리가 까만 귀여운 소녀가 앉아 있었다. 눈매가 위로 살짝 치솟
  아 있어 커다란 고양이같아 보였다. 소녀의 등 뒤에, 방금 전 여
  관에서 보았던 여자가 서 있었다. 하녀는 그녀에게 다가가 공손히
  뭐라 말했다.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녀가 다시 나와 말했다.

  “하룻밤 머물다 가셔도 된다 하십니다. 하지만 아침은 드릴 수
  없습니다. 이 저택에선, 바깥사람은 해가 뜨기 전에 내보내야 하
  니까요. 하지만 해가 뜰 때 까지는 보호해 드리라 하십니다.”
    “보호요? 강도로부터?”
    “당연히 밖이지요.”

    하녀는 김이 모락 모락 나는 음료수를 건네주었다. 향기가 아
  주 좋았다.

    “드세요. 흠뻑 젖으셨는데, 그냥 계시면 감기 걸려요.”

    쇼온은 이것만 먹고 이갈드를 찾으러 나가야겠다 생각하며 잔
  을 받아 마셨다. 뜨겁지 않은데다 맛도 아주 좋았다. 안개나 구름
  을 삼키는 듯 했다. 배에서 따스한 기운이 퍼져 올라오며 졸음이
  밀려들었다. 당장 나가야 한다는 생각은 드는데, 너무 졸려 바닥
  이 그의 머리를 당기는 것 같았다. 하녀가 와서 따뜻한 담요로 그
  의 몸을 덮어주었다.

    “푹 쉬다 가세요. 걱정 마시고요.”
   

 

 

    눈을 떴을 때, 그는 흠뻑 젖은 풀밭 위에 누워 있었다. 진흙탕
  이 다 된 오솔길 옆이었다. 올게반 산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꽂혀
  있었다. 아차, 이갈드! 쇼온은 벌떡 일어났다가 어지러워서 도로
  쓰러질 뻔 했다.

    “쇼온, 토우 쇼온!”

   등 뒤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갈드인가 싶어 얼른
  돌아섰다. 그러나 그가 합류하기로 했던 사냥단의 단장이었다. 동
  료들도 그 뒤를 따라 달려오고 있었다. 단장이 쇼온을 얼싸안으며
  기뻐했다.

   “잃어버린 줄 알았잖아. 자네 찾으려 여기까지 왔지 뭔가. 이
  근방에서 길을 잃으면 정말 위험하지.”
  “그건 나도 알아요. 저기, 혹시 오는 길에 이갈드 못 봤어요?
  같이 있었는데. 숲을 나오다 잃어버렸습니다. 길을 잃은 것 같은
  데-”

    사람들의 얼굴이 납물이라도 들이부은 듯 삽시간에 창백해졌다.

    “이갈드라니?”
  “아, 근방에서 이갈드와 만났거든요. 분명 이 길로 올라가서 그
  곳에 있는 여관에 묵었는데…… 제기랄, 험프하고 릭콘도 만났지
  뭡니까. 어쩌다 얽혔는 지…… 재수가 없으려니, 정말.”

    단장이 멍하니 물었다.

    “자네, 지금 제 정신인가?”
    “제정신입니다. 물론 어제 좀 제정신이 아닌 일이 있긴 했는데,
  그래도 지금은 분명 제 정신이라고요.”
    “아냐, 아냐. 자네가 제 정신 아닌 건 확실하군.”
  “대체 무슨 소리에요. 이갈드를 놓쳤고, 그를 찾아야 한단 말입
  니다. 여기에 뭐가 제정신이 아닐 이유가 있지요?”

   다들 단장을 보았다. 뭔가 아주 중요한 말을 하라고 떠밀리는
  모양새였다. 쇼온도 단장을 보았다.
    단장은 끙, 하니 한숨을 내 쉬곤 말했다.

  “잘 듣게. 어제, 자네가 길을 잃고 사라진 다음, 우리는 근방 길
  목에 있는 여관에서 하루 묵었다네. 그날 저녁 소식이 전해졌지.”
    “나쁜 소식이었나 보군요?”
    “그래, 아주 나쁜 소식이었네. 이갈드 소식이야.”
    “맙소사, 이갈드에게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역시나 그렇게 내버려 두는 게 아니었다. 쇼온은 너무도 미안
  해졌다. 단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어젯밤이 아니야. 일주일 전 일이라네.”
   “일주일 전에요? 하긴, 어제 표정이 좀 이상하긴 했는데. 그럼
  더 찾아야 하잖아요. 우선 저기로 가서……”
    “죽었어, 그는.”

    쇼온은 길을 가리키다가 그 말을 듣고 멍하니 서 있었다. 너무
  황당해서, 당장 뭐라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네?”
    “일주일 전에 죽었어.”
    “어제 분명 제 옆에 있었어요.”
    “잘 듣게. 자네가 방금 전 까지 무슨 꿈을 꾸었는지는 모르겠네
  만…… 이갈드는 일주일 전에 죽었어.”
    “대체 무슨 일이…아니, 자세히 말해 주십시오.”
    “뮈리엘의 결혼준비가 진행되는 중에, 이갈드가 은행에서 그 애
  지참금하고 결혼비용을 찾아 집에다 두었다네. 자네도 험프와 릭
  콘에 대해서는 들었을 거야. 그리고 이갈드가 그 자식들을 고발했
  다는 것도 알고 있을 거야. 그런데 그 자식들이… 이갈드의 집에
  쳐들어갔다네. 그들이 이갈드의 집에서 나오는 걸 본 사람이 있거
  든. 금방 신고하긴 했는데, 잡진 못했어.”
    “결혼 비용을 훔쳐갔단 말입니까?”
    “돈만 훔쳐갔으면 차라리 괜찮았을 거야. 그 개자식들이 그 집
  에 들어가서 돈만 들고 나왔을 리 없잖아.”

    어떤 일이 벌어졌을 지 짐작이 되자 쇼온은 턱이 뻐근해졌다.

  “이갈드는 의자에 묶여 있었어. 그 앞에 이갈드의 아내와 뮈리
  엘의 시체가 있었네. 뮈리엘은…… 차마 뭐라 말 할 수가 없어.
  이갈드의 시체를 보니, 손끝이 다 부서져 있더군. 눈앞에서 그 꼴
  로 만든 거야.”
    “이갈드는…”
    “뮈리엘도 처참했지만, 이갈드는 더 끔찍했지. 목이 없었다네.”
    “네?”
    “목이 뽑혀져 나갔더란 말이야. 찢겨 나갔더라고. 그리고 그 목
  은 어디로 갔는지 도저히 찾을 수 없더군. 가져다가 어디 못된 곳
  에다 버린 것 같아. 지금 사냥꾼들 분위기가 아주 나빠.”
    “말도 안 되요! 어제, 저는 분명 이갈드를 만났고, 그 자리엔 
  릭콘도 험프도…”

    그 순간에 쇼온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이갈
  드를 보았을 때의 릭콘과 험프의 표정. 그리고 이갈드가 말했었다.
   
   
    “여우 이야기 들어봤나?”

   이제 비가 거의 그친 듯 빗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날이 아주
   더워, 습기가 피어올랐다. 비릿하고 축축한 냄새가 난다.
   남자가 다시 나른하게 말했다.

    “음? 흡혈귀 말고.”
    “흡혈귀야.”

    험프가 작은 생쥐가 찍찍대든 말했다. 이갈드가 웃었다.

  “걔들은 죽은 사람 본인이잖아 하지만 나는 아닐 수도 그럴 수
  도 있어.”
    남자는 웃으며 일어났다. 험프가 입술을 뒤집고 어깨를 숙였다.
    “넌 대체 뭐야.”
    “이갈드지.”
    “거짓말 마!”
    “나는 그 남자와 똑같아. 그 남자의 마음도 기억도 모두 가지고
  있어. 그렇다면 이갈드가 아니고 뭔가.”
  “거짓말 말라니까! 넌, 넌 이갈드가 아냐! 이갈드 일 리가 없
  어!”
    “그럼 나는 뭐지?”
    “하여간 이갈드는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좋아, 우선 이야기를 하나 시작해야 겠군……”

    남자는 파이프를 꺼내 불을 붙였다. 치직, 하더니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버릇은 영락없는 이갈드였다.

  “그날 말이야, 이갈드는 굉장히 기분이 좋고 서운하기도 했어.
  그래도 사위가 괜찮은 녀석에다 부자이기까지 하니 괜찮은 거라
  고 생각했어. 그래, 사냥꾼의 딸이 농장주의 부인이 되는 거야! 내
  핏줄을 이은 손자가 그 근사한 농장을 물려받을 테지! 이갈드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딸 아이 결혼준비금과 지참금을 확인해 금고
  에 넣은 다음, 아내에게 키스하고, 이제 곧 신부가 될 딸아이의
  볼에도 키스했지. 열 아홉 살 된 뮈리엘은 정말이지 예쁘고 사랑
  스러웠어..”

    이갈드는 담배를 한번 빨아들이곤 히죽 웃었다. 험프와 릭콘은
  뒤로 주춤 물러났다.

  “밤이 되었지. 모두가 잠들었어. 이갈드는 끙끙대는 소리, 훌쩍
  이는 소리에 눈을 떴어. 그런데 눈을 뜨니 이게 웬 일인가. 꽁꽁
  묶여 있었어! 그 앞에, 너희들이 있었지. 사냥회에 고발당해 쫓기
  는 몸이 되어버린 너희들이 말이야.”
   “닥쳐, 그만!”
  “늙은 아내가 그 앞에서 죽었지. 그리고 너희들은 그 예쁜 여자
  애를 끌고 왔지.”

    험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가엾어라……손 쓸 수도 없고, 누군가 구해주러 뛰어 들어오지
  도 않았지. 불쌍한 그 아이는 아버지 앞에서 그 꼴을 당하고 죽었
  어. 입이 틀어 막혀 울부짖을 수도 없던 아버지 앞에서 말이야.
  예쁜 드레스를 입고 시집가야 했을 딸이, 이제 그 앞에 피투성이
  가 되어 죽어 있었지. 이봐, 그냥 돈만 가지고 갔으면 안 되었던
  거야? 왜 그런 짓까지 한 거야?”
    “그, 그건…”
  “원한이고 증오고 억울함이고 필요 없었어, 너희들은. 그냥……
  마침 기회가 생기니 쳐들어 간 거지. 돈이 가지고 싶었는데, 그
  여자애를 어떻게 좀 해 보고 싶었는데, 마침 기회가 생긴 것 뿐이
  야. 안 그래? 핑계대지 마. 주절대지도 말고. 그냥 그러고 싶었던
  거지?”

    험프가 외쳤다.

    “분명 죽었어, 넌!”
    “정말? 정말 죽였어?”

    이갈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배를 그었는데 죽지 않았을 리가! 시간이 좀 걸리긴 했을 테
  지만, 그래도 죽었어야 해!”
  “맞아, 너희들은 치명상을 입히고 유유히 자리를 떴지. 하지만
  그게 더 나쁜 짓이었어. 즉사를 시켰어야지. 이갈드는…가엾은 이
  갈드는, 그 시체들 사이에서 한 시간이나 살아 있어야 했다고. 일
  부러 그런 거지? 일부러 그렇게 서서히 죽어가도록 한 거지?”

    험프의 눈이 빛났다.

   “그래, 맞아! 이갈드는 죽었어!!”
  “그게 문제였던 거지. 그리고 그 한 시간이 모든 것을 바꾼 거
  야. 이갈드의 몸 안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증오가 무언가를 끌어
  들였지. 사방이 고요해지니, 피가 흥건하게 고인 바닥 위에 무언
  가가 눈을 뜨고 그를 보고 있었던 거야. 착한 악마가 방문한 거지.
  그 악마는 이 죽어가는 불쌍한 남자에게 말했어. 이봐, 넌 죽을
  거야. 그런데 방금 도망친 그 자식들은 잘 살 테지? 억울하지? 자,
  내 말을 잘 들어봐. 나는 당신을 위해 복수를 해 줄 수 있어.”

    그리고 이갈드는 두 손을 펼쳐보였다.

  “대신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얼굴과 당신의 30분남은 생명을
  가져가겠어. 그리고 말이야, 당신이 그들의 죽음을 볼 때까지 내
  안에서 당신이 살아 있도록, 당신의 영혼이 머물도록 해 줄게. 그
  들의 죽음을 보라고. 내가 정말로 제대로 죽여줄 테니까.”

    험프와 릭콘은 뒤로 물러났다.

  “그 악마는 그리곤 이갈드의 머리를 덥석 삼켰지. 그리고 이갈
  드가 되었어.”
   “헛소리!”
  “그의 얼굴을 하고 그의 목소리를 가지고 그가 하는 일도 할
  수 있지. 그래서 나는 이갈드고, 그 이갈드가 된 보답으로 약속을
  지키러 왔다네.”

   험프와 릭콘이 단검을 뽑았다. 그러나 잠깐 뭐가 스치는가 싶
  더니, 그 두 단검은 모두 이갈드의 손안에 있었다.

  “길에서 나를 만났을 때 기겁했겠지. 그래서 오늘 아침에 사냥
  을 나가자고 했겠지? 그리고 너, 네가 나를 벼랑에서 밀었지. 그
  런데 이게 웬 일인가. 나는 또 너희들 앞에 나타나 있으니.”

   험프가 황급히 몸을 뒤졌다. 이갈드의 손에서 이번엔 표창이
  튀어나왔다.

    “이거 찾나? 방금 전에 가지고 왔어.”
    “도, 돈이라면 돌려주겠어. 어차니 넌 이갈드도 아니잖아!”
    “저런, 아냐. 나는 이갈드야. 그의 분노, 그의 증오, 그의 슬픔,
  모두 가진 이갈드지.”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험프와 릭콘는 행여나 쇼온이라도 왔
  나 싶어 황급히 돌아보았다. 그 문 앞에, 여관집 아들과 여관 주
  인이 서 있었다.
    여관주인이 말했다.

    “이봐,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이갈드는 두 손을 벌렸다.

   “걱정마. 나는 당신과는 달리 이런 고기엔 흥미 없다고. 대신…
  자, 약속한 대로 해야지. 음? 나는 구경하면 되는 거라고. 자, 시
  작해.”

    험프와 릭콘은 입을 쩍 벌렸다.

   “그 사람들 좀 묶어 줘. 나 혼자 다 할 수는 없잖아. 좀 도와.”

  험프와 릭콘이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휙하는 순간에 그들은 
  팔 다리 꼼짝달싹 할 수 없게 벽에 묶였다.

    이갈드가 물었다.

    “산채로 할 꺼야?”
    “당연한 말을. 나는 죽여서 하는 건 정말이지 싫어. 그건 솜씨
  없는 놈이나 하는 짓이지. 얘야, 부엌 가서 솥 좀 가지고 와라.”

     아이가 부엌으로 달려가다 기둥 옆에 있는 단지를 걷어찼다.
  단지 안에 든 소금이 쏟아지며, 그 안에 들어있던 사람 몸뚱이와
  머리가 튀어나왔다.
    릭콘과 험프가 이갈드를 돌아보았다.

    “우리를 어디로 끌고 온 거냐!”
    “너희들이 누군가를 먹어치웠듯, 여기서는 너희들을 먹는 것뿐
  이야. 아, 물론 이 주인은 다른 주인들과는 달리 되도록 오래 살
  려두는 데 아주 능숙하거든. 각별히 뛰어난 요리사를 골랐으니,
  마음껏 즐겨.”
    “도, 도와줘! 제발!”
    “너희들이 정말 죽을 때까지 옆에 있어 주기는 할게.”
    “잘못했어, 제발! 잘못 했다니까!”
    “그런 건 이갈드란 남자의 집 문 턱을 넘기 전에 생각했어야
  지.”

      여관주인이 식칼을 들었다. 흰 빛이 번뜩였다.
 
   “자, 맛있게 먹혀.”
 
     이갈드가 웃으며 말했다.

 

    

 

 





* 본편은 아닙니다. 본편과 연관된 단편을 좀 줄인 다음에-_-;  올리는 겁니다.

 

 

 

by 아울양 | 2008/04/23 02:19 | 제작노트 | 트랙백 | 덧글(22)

트랙백 주소 : http://owljjang.egloos.com/tb/371432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라쿤J at 2008/04/23 02:45
.....발매일은 언제입니까.[두근두근]
Commented by 에이비 at 2008/04/23 02:47
앗, 나왔다?!;ㅁ;
Commented by Thanatos at 2008/04/23 02:53
엇, 발매되는 것이면 사서 볼래요. 역시 책은 손맛.
Commented by 블루가넷 at 2008/04/23 08:57
아앗, 여우 이야기인가요? 근데 어째서 갤러리란의 그림은 아직도 '기타'란에 있는지...;;
Commented by 뮤나 at 2008/04/23 10:16
와, 두근두근!
여우의 이야기군요!+ㅁ+
Commented by 희야 at 2008/04/23 10:23
멋집니다. 그리고 기쁩니다.
Commented by 한양댁 at 2008/04/23 11:15
본편은 언제 읽을 수 잇나요? 이번 책 표지는 어떤가요? 기대됩니다.
Commented by 연휘煉暉 at 2008/04/23 11:20
왠지 두근두근
Commented by 토묘 at 2008/04/23 11:35
ㅠㅜ 너무 재밌어요! 책이 언제 나오나 눈 빠지게 기다려야겠네요!!!
Commented by 검은뱀 at 2008/04/23 12:16
앗, 이런 이야기를 기다렸어요! 언제 출간되나요? 두근두근.
Commented by 노트 at 2008/04/23 13:10
좋아요ㅠㅅㅠ

이제 지갑사정같은 건 상관없어졌습니다. 내 주시기만 하면 바로 사러 갑니다!
Commented by Jin- at 2008/04/23 13:30
중간에..
잠시 뒤, 쇼온과 릭콘이 속닥대며 올라 오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험프와 릭콘이 속닥대며 올라 오는 소리가 들렸다.
쇼온이랑 험프랑 바뀐 것 같아요~

본편이 기대되네요>_<
Commented by Gullveig at 2008/04/23 13:59
파일럿 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걸 보니 본편은 더 기대되는군요;ㅁ;
Commented by 아샤 at 2008/04/23 15:03
우....우와아! 저 이런 내용 무지무지 좋아해요! 완전 취향입니다.
책으로 나오면 바로 사버릴래요! 꺄아~
Commented by 향기 at 2008/04/23 17:40
줄인, 것이로군요.
음... 일단 지금 눈이 아파서 프린트 해서 볼테에요... 이힝.
Commented by 카시니츠 at 2008/04/23 22:34
발매일이 필요합니다!
Commented by 류논 at 2008/04/23 22:49
줄인거../침 발매일을 체크하고 숨길 곳을 체크하고 돈을 좀 모아야겠고...아악, 어찌하여 저에게 이런 영광스럽고 행복한 고뇌를 내리시나이까...otz
Commented by 말랑이 at 2008/04/23 22:57
으와앙;ㅁ; 너무 기다려지네요! 발매일이 언제죠?
ㅠㅠ
Commented by 놀부전 at 2008/04/23 23:44
복수 ㅎㅎ
Commented by 이타 at 2008/04/24 02:23
헛 섬뜩!! 흥미진진해요 ㅠㅜ 언제 나온답니까...
Commented by Raven at 2008/04/24 07:19
동양과 서양의 색채가 섞인듯한 이야기..^^ 멋져요!!

근데 저만의 느낌인가요;;
Commented by 캣캣 at 2008/04/26 19:29
뭔가, 요괴가 나올듯한! 신비한 분위기!!
아아, 너무 좋아요. 정말 기대만발입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